책 나눔

기도회로 교회를 살려라 1

kaleo 2011. 4. 13. 14:22




19세기 최고의 설교자로 불리는 찰스 스펄전의 기도회 설교 모음집입니다. 그 중에 인도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설교가 있어서 뽑아 올려봅니다. 진작 올린다는게 게을러서... 인도자 여러분은 한 번씩 꼭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저희 토요 기도회와 이 시대의 기도회가 상황이 다르기에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어떻게 기도회를 인도할까 고민할 때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글이 길어서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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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내가 처음 신앙생활을 할 때만 해도 기도모임을 가질 때 잘못된 관행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지적하면, 첫째는 지나치게 오래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20-30분 동안 기도하고 너무 오래 기도해서 미안하다는 말로 기도를 끝맽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치 고행을 하듯이 그 기도를 참고 들은 사람들은 미안하다고 해도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런 잘못을 바로 잡는 방법은 목회자가 기도를 간단하게 하라고 권하는 것 뿐입니다. 기도를 지나치게 오래 끄는 잘못은 기도회의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때문에 설혹 기도하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근절해야 합니다.

둘째는 미사여구로 치장한 속빈강정 같은 겉만 번드르하고 내용은 없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생각이 없는 말이 전쟁터에 뛰어들 듯이 주님 앞에 성급히 달려가지 않습니다"라는 기도를 예로 들겠습니다. 이 기도는 마치 말이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말을 언급하려면 말의 기상과 힘을 강조하는 편이 좋습니다. 그 사람은 멋스런 표현이라 생각하고 사용했겠지만 그런 기도는 기도라기 보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공허한 표현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 이 밖에도 기도할 때 즐겨 사용하는 표현 중에 "티끌보다 못한 비천한 죄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특히 교인들 가운데 제일 교만한 사람들이나 부자, 굽실거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표현을 즐겨 사용합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에게 "티끌보다 못한" 이라는 말이 그렇게 부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선량한 신자가 자녀들과 손자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티끌'이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 주님의 티끌, 티끌의 티끌, 주님의 티끌의 티끌의 티끌을 구원하옵소서"라는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창18:27)" 이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잘못 인용하거나 남용할 바에는 차라리 사용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이밖에도 성경말씀을 왜곡하거나, 천박한 비유나 어리석은 표현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런 사례를 모두 열거하려면 시간도 없고 여유도 없습니다. 그런 표현은 무지와 위선과 속된 모방심리에서 비롯된 영적 비속어에 해당됩니다. 그런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것은 당사자도 수치스럽고, 듣는 사람도 견딜 수 없이 혐오스럽습니다. 이처럼 왜곡된 표현은 기도회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다시 말해, 그런 비속어는 기도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셋째는 기도를 설교로 착각하는 태도입니다. 소위 재능이 있다는 평판을 듣는 사람들이 종종 공중기도를 자신의 경험이나 신조를 나열하거나 시편과 같은 성경을 주해하고, 심지어는 목회자와 그의 설교를 비판하는 기회로 삼곤 합니다. 그런 사람의 기도를 듣고 있노라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향한 기도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말 자랑을 늘어놓거나 문장력을 자랑하는 것은 신성모독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하는 증거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구하는 내용이 단 한 마디도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참 신자라면 이런 무의미한 기도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시간에 설교나 교리 강해가 진실한 기도를 대체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 밖에도 한 말을 계속해서 되풀이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지금도 여전합니다. 형식적인 기도가 온당치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같은 말, 같은 문장, 같은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신자는 늘 똑같은 기도문을 암기하여 늘어놓기 때문에 언제 기도가 끝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좋지 않은 관행입니다. 잉글랜드 교회의 기도문은 대부분 뛰어난 기독교인들이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성경만큼 아름다운 기도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도문이라 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실어 기도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암송하는데 그친다면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에 그 기도를 드릴 때 실렸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열정이 담긴다면 "기도회에 가서 무슨 유익이 있을까? 이미 무슨 기도를 드릴지 다 아는데" 라는 불평의 소리를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런 빌미를 내세워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인간은 다 연약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그런 식이 되다가는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잘못된 습관이 형성되기 쉽습니다. 늘 똑같은 말을 늘어놓는 기도가 사람들이 기도회에 오지 않는 절반의 이유라면, 나머지 절반의 책임은 그것을 빌미로 기도회 불참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이런 폐단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개중에는 도무지 개선의 여지가 없는 무모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개선"을 모토로 삼아야 합니다. 특히 기도회의 경우에는 많은 개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