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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년도의 추억 (장로님이 드립니다.)
kaleo
2011. 6. 20. 00:12
2007년도 갓 중보기도국에 들어갔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인가, 주일 모임에서 당시 국장님이 혹시 기도원 같이 갈 사람 없냐 그러시더라구요. 저는 대뜸 가겠다고 손을 들었었죠. 형은 괜찮겠냐고, 진짜 갈거냐고 그래서 왜 사람을 못 믿냐 그랬습니다. 근데 가보니 왜 물어봤는지 알겠더라구요.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지 제 몸에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세찬 물줄기처럼 땀이 쏟아지는 경험은 이 날이 처음이자 유일했습니다.
형이 절 보고 쓰러지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결국 초행길 산을 무사히 올랐습니다. 올라가는 내내 온갖 간증을 다 들었죠.
'여기가 너희 22,23,24기 선배들이 고등부때 악기 메고 올라가다 넘어졌던 곳이야.'
'어떤 집사님 한 분이 몸에 마비가 오셨었는데, 꼭 한 번 무척산 기도원에 가고 싶다고 하셨어. 그래서 들것에 눕혀서 우리가 메고 올라갔지. 거기서 나으셨다?'
'너희 선배들이 겁도 없이 저 산 꼭대기 올라가서 산기도하다가 방언 많이 받고 그랬다...'
등등.
저에게 있어 그 선배님들은 어떤 믿음의 선진들이나 유명한 강사 목사님보다 닮고 싶은 분이었습니다.
올라가자마자 시원한 물 한 잔 들이키고 찬 물에 샤워를 하는데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비록 원하던 것과 달리 금식기도는 불과 두 끼만에 실패했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뜨겁게 중보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심심할 땐 기도원 옆의 호숫가를 거닐으며, 바깥 사회와는 완전히 단절된 채 기도제목만 산더미처럼 들고가 기도했던 때였습니다. 그냥 기도제목을 받기만 한게 아니라 실제로 다 기도했던 때.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저희가 한가했을까요? 사역이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때 저희는 정말 '기도하기를' 갈망했었습니다. 정말 기도해야할 때라는 절실함을 느꼈었습니다.
사진에 나오는 저 강당 안에는 아무도 없이 저와 국장님 둘 밖에 없었더랩니다. 몇 시간이고 기도하고 질리면 찬양하고 하다가, 누가 먼저 시킨 것도 아닌데 서로를 위해서 기도를 했었습니다. 자세히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공통된 제목은 이것이었습니다. 서로가 이 대학부를 지탱하는 뿌리같은 중보자가 되기를. 서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당시 저와 함께 했던 국장님은 사회에서 그 빛을 발하고 계십니다. 전 그때 선망했던 선배들처럼 되고 싶었고, 그 국장님과 같이 믿음직한 선배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선배들에게 너무 부끄럽습니다. 혹 예수님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때까지 기도하셨단 말씀 기억하십니까? 전 저희 선배들이 그렇게 기도하는 걸 보고 자랐습니다. 그들을 따라가고자 저도 땀방울이 바닥에 흥건히 고이도록 기도했었더랩니다. 그런데 어떨 땐 전 그 분들이 지켜온 이 곳을 지키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저때의 반의 반, 아니 10분의 1이라도 여러분을 위해 헌신하고 기도한다면. 저때처럼 더운 날씨에 짐을 아니, 기도제목을 싸들고 기도원에 갈만큼의 열정이 있다면 부끄럽지도 않을 것입니다. 정말 선배로서 모범이 되지 못해 너무 미안합니다. 열정을 전해주지 못하고 기도의 즐거움을 전해주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의 용사가 될 필요는 없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는 예배자로, 섬김이로, 각자 받은 은사대로 이 자리에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여러분에게 그 부르심을 받은 자 답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그러나 못난 선배로써
여러분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삶이 고달프고, 바쁘고, 분주하고, 힘들다 할지라도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서약과 사명은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모두가 NO라고 말하며 섬김의 자리를 내려놓는다 해도, 하나님의 사역은 계속 되어야만 하고, 하나님의 그 사역은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부르신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집니다. 우리 모두가 손을 내려놓는다면, 마땅히 계속 되어야만 할 그 사역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이 누군가는 했어야만 했던, 그러나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십자가의 사역을 포기하셨더라면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긴 글 주저리 주저리 그만하고 마무리 하겠습니다.
목사님과 심화반을 하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부활이 없다면 어떤 삶을 살겠냐고요. 많은 사람들은 그 날, 천국에 갈 날을 기대하며, 우리가 이 땅에서 드린 헌신과 사명에 걸맞는 상급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학자들은 천국에서 받을 우리의 상급은 따로 존재치 않는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어떤 상급보다도 귀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구원을 받은 우리가 더 받을 상급이 있겠냐 하는 것입니다. 감히 우리가 그걸 바랄 수는 있냐는 말입니다.
저는 우리 중보기도국이 현실에 무너지고 넘어지길 바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 망하는 것까지도 기뻐하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결, 그 구원의 감격을 잃지 않는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상황에서 구원을 받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을 얻었음에 만족하고 감사하며 헌신하는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제가 얼마나 더 이 곳을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대학부를 떠나고 중보기도국을 떠난 이후에도 전 그렇게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